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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1(월)·죄 없는 이웃을 괴롭히다

묵상2(화)·주님을 만나 회심하다

묵상3(수)·선교를 시작하다

묵상4(목)·전도 여행을 시작하다

묵상5(금)·배척당하고 실패하다

묵상6(토)·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자

묵상7(일)·로마로 압송되고 순교하다

 

묵상1(월)·죄 없는 이웃을 괴롭히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사도 7,54-8,3]

초대교회의 일곱 부제 중 한 사람인 스테파노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지는 것을 시기한 유다인들이 스테파노에게 하느니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씌우고 그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청년 바오로는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했기에 스테파노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거짓으로 증언한 사람들의 겉옷을 맡아주며 그들과 행동을 같이하였습니다. 바오로는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안식일이나 정결례처럼 유다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율법의 규정을 무시하는 예수님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근본 정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깊은 내면을 바오로 사도가 아직 알아보지 못한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주장도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활은 세상 끝 날에나 있는 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삶에서 : 청년 바오로처럼 나도 내 신념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를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봅시다.

 

 

묵상2(화)·주님을 만나 회심하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사도 9,1-25]

다혈질의 청년 바오로는 그리스도교를 없에 버리려고 신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남자든 여자든 그들을 끌어다 감옥에 넘겼습니다. 그는 살기를 내뿜으며 다마스쿠스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온 바오로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맞이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찼던 것일까요?바오로 사도는 사흘 동안 앞을 볼 수 없었고, 먹고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이름을 알리도록 주님께서 선택하신 그릇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순간부터 교회의 박해자에서 복음의 전파자로 철저히 변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때의 일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다"(필리 3,12)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렸습니다(필리 3,13).

나의 삶에서 :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주님은 날마다 내가 당신께로 회심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내 마음을 주님께로 돌려 드립시다.

 

 

묵상3(수)·선교를 시작하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사도 9,20-31]

얼마 전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뽑으려고 하던 청년 바오로가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믿는 바를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참 놀라운 실천입니다. 박해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급변한 바오로 사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다마스쿠스 사람들은 바로로 사도를 미워하여 체포하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안 바오로 사도의 제자들이 밤에 그를 바구니에 실어 성벽에 난 구멍으로 내려보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아레타스 임금의 총독이 나를 잡으려고 그 성을 지키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 난 창문으로 내려 주어서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일도 있습니다."(2코린 11,32-33) 그 뒤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의 두 지도자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후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가서 한동안(36-44년경) 전도하였습니다.

나의 삶에서 : 나는 이러저러한 조건들을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믿는 대로 실천에 옮깁니까? 나는 나의 믿음을 얼마만큼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까?

 

 

묵상4(목)·전도 여행을 시작하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사도 13-14장]

유다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다른 사도들과 달리 바오로 사도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5년경 바르나바와 그의 사촌 요한 마르코와 함께 첫 번째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지중해 동부 지역을 세 차례에 걸쳐 광범위하게 전도 여행을 했는데, 이 위대한 여행의 거점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였습니다. 제1차 전도 여행 중에 겪은 가장 황당한 일은 리스트라에서 일어났습니다. 바오로가 앉은뱅이를 고쳐 주자 사람들은 바르나바를 제우스 신으로, 바오로를 헤르메스 신으로 여겨 그들에게 제사를 바치려고 한 것입니다. 두 사도는 자신들의 옷을 찢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지르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을을 전할 따름입니다." 두 사람은 제사 지내려는 그들을 간신히 말렸습니다. 이 곳 리스트라는 또한 바오로의 애제자 티모테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나의 삶에서 : 자신들은 신리 아니라 사람이라 고백하며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한 바오로 사도처럼 나도 언제나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묵상5(금)·배척당하고 실패하다

바오로 사도를 기억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사도 15,36-18,22]

50년경 바오로 사도는 실라와 함께 제2차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이때 유럽 대륙에 첫 번째 교회가 생기는데, 바로 필리피 교회입니다. 필리피 교회는 바오로 사도의 생계와 전도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유일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귀신 들린 하녀를 고쳐준 바오로 사도는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된 그 주인의 고발로 감옥에 갇힌 적도 있었습니다. 베로이아에서 전도할 때는 테살로니카 유다인들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제자들을 남겨둔 채 홀로 아테네로 가야 했습니다. 아테네는 당시 정치·경제적으로는 몰락했지만 문화적 수준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오로 사도의 설교는 전혀 먹히지 않았습니다. 몇몇 철학자들은 "저 떠벌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가?라고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해 말하자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테네에서 한 바오로의 전교는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나의 삶에서 : 우리도 선의(善意)를 가지고 좋은 일을 했는데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거나 반대에 부딪히거나 인간 관계에서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말고 바오로 사도를 본받아, 끝까지 선의를 실행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하느님께 청해 봅시다.

 

 

묵상6(토)·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자

바오로 사도를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사도 18,23-21,16]

53년경 바오로 사도는 세 번째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행에서 그는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쓴 편지들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신약성경의 서간이 되었습니다. 에페소에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들을 썼고, 코린토에서는 자신의 사상을 총정리해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를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라고 합니다. 아마도 바오로 사도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 신학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대표적인 신학자는 성 아우구스티노이며, 그의 영향을 받은 대표 인물은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사였던 마르틴 루터입니다. 개신교는 그 영향을 특히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보편 교회로서 어느 한 신학자에 치우침 없이 성경은 물론 전승들과 성 아우구스티노의 신학을 포함한 모든 신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를 모두 보유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에서 : 바오로 사도 시대에도 코린토 교회는 바오로 편, 아폴로 편, 케파(베드로 사도)편, 그리스도 편 등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1코린 1,10-17). 우리도 보다 넓은 마음으로 갈라진 형제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묵상7(일)·로마로 압송되고 순교하다

바오로 사도를 공경하는 마음의 묵상[사도 27,1-28,15]

58년경 바오로 사도는 카이사리아의 총독부 감옥으로 이송되어 미결수로 2년 동안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사도 23,12-24,27). 바오로 사도는 이곳에서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황제에게 항소합니다(사도 25,1-12). 그래서 그는 로마로 압송됩니다. 60년 가을, 카이사리아에서 출항하여 크레타 섬을 거쳐 항해하던 중 바오로가 탄 배는 파선당하고 맙니다. 바오로 사도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몰타 섬에서 석 달 동안 지냈습니다.

로마에서 바오로 사도는 한 군사의 감시를 받기는 했지만 2년 반 동안 셋집을 얻어 비교적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일종의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면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아들여 담대히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오로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투신한 바오로 사도는 스테인에 가서도 전도하고 싶어 했는데(로마 15,24-28), 그 꿈이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바오로 사도가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순교했다고 전해 줍니다. 진정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오로 사도다운 최후였습니다.

나의 삶에서 : 우리 각자의 삶에도 크고 작은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집니다. 나는 내 삶을 마칠 때 어떤 결산을 하게 될까요?